‘나눔의집’의 7 명의 실무자들의 고발을 지지합니다! ‘나눔의집’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시설입니다!
ナヌㇺの家 - 2020年06月24日 (水)
나눔의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정면으로 마주 대하고자 하는 일본인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장소입니다. 피해자의 체온을 느끼면서 일본의 위안소 정책, 일본군에 의한 성폭력의 실태를 알고, 피해자가 꿋꿋하게 살아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돌아가신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장소입니다.
저희들은 이번 나눔의 집의 7명의 실무자들의 내부 고발에 놀랐고, 동시에 그 용기에 감동받았습니다. 운영 모체(母体)인 조계종이 할머니들을 위해 모아진 막대한 기부금을, 할머니들의 사후에는 새로운 복지 비지니스에 사용하려고 하였고, 이 때문에 할머니들을 위해 직접적으로 사용된 금액은 전체 기부금의 5%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부재판의 원고였던, 박 두리 할머니는 1993년에 나눔의집에 입주하여 2006년에 돌아가셨습니다만, 돌아가시기 전의 2년간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박 두리 할머니의 당시의 상태는 24시간 간호가 필요하였고, 당시 나눔의집에는 그 인적여유가 없어 새로운 간병인을 고용해야 했지만, 나눔의집에서는 그러한 비용은 자비(自費)로 지불해야 한다고 하여,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할머니는 나눔의집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노인전문병원에 들어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입원 며칠 후 병원의 실수로 다리에 큰 화상 (핫팩에 의한 저온 화상)을 입게 되어 안양 메트로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으시고 회복했지만, 혼자서 걸으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사고를 낸 노인전문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같은 원인의 화상을 입어 안양 메트로병원으로 옮겨 두 번째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기적적으로 회복한 할머니는 이번에도 또다시 같은 노인전문병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다 다시 그 곳에서 침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대퇴골 골절을 입으시고 다시, 또다시 안양 메트로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아, 일시적으로 회복되셨지만 결국 그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하셨습니다.
왜 나눔의집에서는 간호 체제를 만들 수 없었는가, 왜 3번이나 그 열악한 노인전문병원에 입원을 시켜야 했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고발로 운영 모체인 조계종의 방침에 그 근본 원인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무 직원분들이 그러한 어려운 노동 환경 속에서도 자신들의 자비로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으로 오랜 시간 할머니들의 돌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실무자 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눔의집의 운영에 관계되신 모든 분들은 이러한 실무자분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으셔서, 할머니들을 위해 모아진 기부금은 할머니들을 위해 사용해주십시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없으시다면 조계종은 나눔의집 운영에서 손을 떼 주십시오.
저희들은 살아 계신 할머니들이 남은 여생이나마,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내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2020 년 6 월 20 일
'위안부'문제에 주력하고 있는 후쿠오카 네트워크
전후(戦後) 책임을 묻는 · 관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有志)
「慰安婦」問題にとりくむ福岡ネットワー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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